인생의 성공이란 있잖아.
무엇을 하고 무엇을 이루었느냐로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어떤 분이고 진짜 나는 어떤 존재인지를 얼마나 깊이있게 깨달아 아느냐로 판가름 나는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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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확신”
신자에게 참 중요한 것이지만 또 위험한 것이 될 수도 있는 것

“구원의 확신”
신자에게  참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또 충분하지는 않은 것



去去去中知 行行行理覺 (거거거중지 행행행리각 )

태산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풀처럼 자신을 낮추어라
이치가 명확할때 과감히 행동하라.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걷고 걷고 걷다 보면 알게 되고
행하고 행하고 행하다보면 깨닫게 된다.


- 노자 <도덕경>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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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스스로가 지옥에 들어가야 할 마땅한 죄인이었음을 알고
지옥으로 들어가라는 명령에 두렵지만 순종하는 그 마음이다


구원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냐고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확히 그 질문 때문에 당신은 구원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굳이 방법을 제시하라고 한다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

“우리에겐 전혀 방법없음을 알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오직 그 하나가 방법이라면 방법이 되겠다


믿는 자들끼리도
복음에 대하여 말씀에 대하여 나눌 때

복음 비슷한 것들 까지는 공감대가 잘 이루어지는데
복음 가까운 곳까지는 대화가 통화는 듯 하다가도

복음의 그 깊은 곳으로 들어가 우리의 수치스런 죄악과 무력감과 가치없음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다함없는 영광과 은혜를 드러내는 자리로 들어갈 때면

내가 믿고 따르던 믿음의 선배들이나 믿음의 동역자들이나
모두 나의 이야기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내가 틀린건지 그들이 틀린건지
이 역시 그저 자만하지 않게 하시는 주의 은혜라고 봐야하는 건지

그럼 나는 또 혼자임을 느낀다
그들은 그렇게 날 또 외로운 골방으로 들어가게 한다
홀로 외로이 말씀 안에서 주님이 주신 은혜의 복음을 다시금 점검하게 한다

도대체 그 누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자신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그 누가 진리 아닌 다른 것에 대해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있는가
우리에게 도대체 그 무언가를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이라는 것이 애초에 있기나 했단 말인가

내가 아는 모든 지식은 거짓일 수 있어도 내가 만난 예수님은 거짓일 수 없다
그로 말미암아 내가 있기에 그가 아니면 나도 그냥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그 분 안에서만 오직 존재일 수 있고 의미일 수 있다
나는 그저 그 진리의 복음을 믿는다
그 복음이란 나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다

주님 앞에서 나는 철저하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도무지 용서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완전히 불의한 죄인이었고
주님은 흠없고 공평하시고 그 사랑에 전혀 부족함 없으신 하나님 이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내 안에서 터져 나오는 고백은 단 하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오직 그 뿐이다

내가 전하고 싶은 것은
오직 그 한가지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밝히 드러난
하나님의 그 크신 영광 그 크신 능력 그 크신 위엄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 사랑


하나님이 못하시는 한가지 일이 있다면

그것은 성도를 지옥으로 보내는 일일 것이다. 성도는 지옥에 가서도 천국을 살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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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이끄는 분
내 인생을 지키기는 분
내게 평강 주시는 이
나의 아버지
나의 구원자
날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분
...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이 정도의 이미지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일 때가 많다

이런 인식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이런 관점으로만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오해요 무지가 될 수 있기에 염려스럽다.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냐마는
적어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잡힌 시각은 필요하다고 본다

하나님을 이해하고 바라보는데 가장 균형잡힌시각을 갖도록 도움을 주는 관점은 창세기1:1의 그림이 아닌가 싶다

하나님은 창세기 1:1에서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창조주로 소개한다.

창조주의 그림으로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가장 쉬우면서 폭넓게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 된다.

창조주 하나님이기에
나는 그의 피조물이 되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고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으며
하나님이 나를 천하게 쓰시든 귀하게 쓰시든 그의 온전한 주되심을 인정할 수 있다.

나의 지식과 경험 그리고 나의 행동이 결코 하나님의 영광과 선하심을 훼손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표현하는 수 많은 수식어들이 있지만
그 많은 수식어의 중심에
창세기1:1의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이 우리 모두의 신앙의 근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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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진짜와 가짜가 있어
진짜는 본질이고 주체이며 가짜는 현상이고 객체이지
진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현상들을 만들어내는 근원이라고 할 수 있어

예를 들면 지구공전과 계절같은거야
꽃이 피고 열매 맺는 계절은 눈에 보이지만 그건 실체가 아니야
지구공전에 의한 현상일 뿐

과학자들은 현상들을 관찰해서 자연의 본질을 밝혀내는 사람들이야.
그렇게 자연의 본질을 밝혀나가다 보면
결국에는 하나의 벽에 부딪히게 되는데
그것은 그럼 이 자연의 본질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왔느냐는거지
결국 그 실체가 자연의 본질을 만들어내고 이 모든 현상을 만들어 냈다고 볼 수 있는거야

하지만 인간은 그에 대한 답을 찾을 수가 없어
그 답은 자연 밖에 있기 때문이야

그런데 그 자연 밖의 실체를 아는 방법이 있어
그 방법은 인간에게 있지 않고
자연 밖의 그 실체에게 있지
그렇기 때문에 이 방법은 전적으로 자연밖 그 실체의 뜻과 의지가 필요해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이 역사속에서 일어난거야
그 실체는 2천년 전에 이땅에 살았던 예수였어

믿겨지니?
믿겨지지 않는 것은 당연해
그 믿음은 바로 그 실체가 자기의 뜻과 의지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기 때문이야

여기서 인간은 두가지로 분류돼
하나는 이 이야기가 믿어지는 사람이고 또 한 부류는 믿어지지 않는 사람들이지

그는 그런 방식으로 세상사람들을 둘로 나누는거야


믿음이란
하나님만으로 충분한 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나는 그런 자가 아니고 그런 자가 될 수 없음을 철저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다가 그런 자리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면 그 모든 것이 주님이 하신 일임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안됨을 알기에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만을 구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내세울 것이 아무 것도 없어 면목없이 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십자가에서 자기의 생명을 내어주었기 때문에
날 향한 그 사랑을 조금도 의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 때문에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최고의 것을 주시는 하나님임이 증명되었고 보장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믿음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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